“사랑은 아파하며 하는 것이다”
<누가복음 15:11~24>
2000년 광복절을 맞아 남북이산가족의 상봉이 있었습니다. 그 때 남쪽에서 올라간 한 아버지는 나이가 50인데도 이가 다 빠지고 깡말라버린 얼굴에 자신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아들을 안고 안타깝게 울었습니다. 태어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아들을 두고 내려왔다는 죄책감에 50년을 마음 아파하며 살았습니다.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었기에 아들을 만났음에도 마음 한 구석엔 계속 미안함이 앞섰고, 그래서 아버지는 연신 눈물만 흘렸습니다. 마침 이 때 북쪽 TV 기자가 이들의 상봉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습니다. 그러자 남쪽에서 올라 간 아버지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“김정일 장군 만세”를 외쳤습니다. 평생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아버지가 이제 아들이 북으로 돌아가 살 때, 조금이라도 편히 살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자 하는 마음에 그런 터무니없는 일을 한 것입니다. 이 모습을 지켜 본 기자는 이렇게 기사를 썼습니다. “갑자기 김정일을 찬양하는 그의 모습은 주위 사람들을 처연하게 하였다.”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, 그 자리에 있던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은 처연한 아버지의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.
① 아버지의 사랑에서 제외될 자는 없다.
우리가 잘 아는 성경의 비유 중에 탕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. 평범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, 1세기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를 하실 당시의 청중들에게는 아주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. 당시 아들이 아버지에게 재산을 분배 받는다 하여도 그 재산의 처분은 아버지의 사후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. 아버지의 생존 중에는 그대로 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나 그것을 처리했던 것입니다. 그런데 아버지가 살아계심에도 재산 처분을 한 것은 아버지를 죽은 자로 선언하는 행동이 됩니다. 산 자를 죽은 자로 만든 이 행동은 당시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패륜적 행위입니다. 이 패륜적 행위를 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것도 감당하기 힘든데, 아버지는 그 아들을 내쫓거나 호적에서 제외하지 않고, 오히려 먼저 달려가서 그 아들의 입을 맞추고 집으로 맞아들였습니다.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아버지에게 패륜을 범한 아들의 최후가 얼마나 끔찍한지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. 하지만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사랑으로 받아들여 준 아버지의 이야기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.
② 아버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망할 길로 내던졌다.
그렇다면 아버지는 아들이 이런 식으로 재산을 정리할 줄 몰랐을까요? 아버지는 아들의 됨됨이를 잘 알았기에 재산을 탕진하고 말 것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. 그렇다면 왜 아버지는 아들이 뻔히 망할 길로 달려갈 줄 알면서도 그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두었을까요? 이것은 성경에 직접적 언급은 없지만, 행간의 의미로서 살필 수 있습니다. 그 이유는 아버지의 판단에 아들이 살 길은 ‘돈이 없어지는 것’이었습니다. 돈이 있는 한 아들은 계속하여 정신없는 인생을 살 뿐입니다. 그래서 아들을 살리는 길은 돈이 허망함을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. 그래서 아버지는 진정한 아들로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들을 망할 길로 내던졌습니다. 아버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하여, 아들을 죽이는 역설을 선택한 것입니다.
② 사랑은 아파하며 하는 것입니다.
살리기 위하여 죽음의 길로 내몰아야 할 때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? 누구도 말할 수 없는 처연함이 마음에 있지 않았겠습니까? 이처럼 사랑에는 고통이 있는 법입니다. 사랑에는 슬픔이 있는 법입니다. 진정한 사랑은 달콤한 것이 아니라, 아픈 것입니다. 아픔을 품어내야만 진정한 사랑이 가능합니다.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들려주신 이 아버지가 바로 아들을 그렇게 사랑하였습니다. 이 아버지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.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견딜 수 없는 아픔을 통감해야 했습니다. 예수님의 비유를 들으면 하나님의 모습이 유약하고 무력한 것으로 오해가 되기도 합니다.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속엔 이미 아파하고 상처받을 준비가 충만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. 하나님의 사랑은 큰 아픔을 견디는 사랑, 그래서 매우 강인한 사랑입니다. 우리가 강인한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갈 방법은 아픔을 감당할 수 있는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. 그래서 성령의 첫 번째 열매가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.
♣ 말씀과 삶에 다리 놓기
1. 가족, 이웃 간에 이해하지 못할 일들을 경험한 적 있습니까?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일들이 있다면 서로 나누어 봅시다.
2. 살기 위해 죽어야 하는 역설, 곧 더 나은 삶을 위해 현재의 고난을 택한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.
3. 사랑이 달콤하지 않고, 아픈 것이라면 나는 가족, 교회, 이웃을 위해 어떤 아픔을 감수할지 결단해 봅시다.